그린이라는 색깔과 우리들의 색깔이 주는 의미
그린북이라는 제목을 처음 봤을 때 누구든 제목에 쓰여있는 '그린'이라는 글귀를 보고 색깔을 먼저 떠 올릴 것이다. 나도 그랬다. 제목을 보고 초록색 책이라는 것은 무엇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그 제목이 쓰여진 포스터는 영화속 주인공들이 공연을 위해 먼 여정을 떠나는 그것에 사용되는 자동차 색깔과 매우 잘 어울린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물론 완전한 초록색을 가진 자동차라기 보다는 민트색 같은 느낌을 주는 자동차라고 해야 더 정확하겠지만 말이다.
그린북이라는 말은 원래 1960년대 당시에 흑인들과 섞이 싫어했던 백인들이 만들어낸 책자라고 생각하면 된다. 흑인들에게 이 책자를 나눠주고 흑인들은 백인들 사이에서 어떻게 행동하면 되는지를 알려주는 지침서와 같은 것이다. 그것을 본 흑인들은 그 지침서의 내용대로 행동해야 하고 그것을 어길시에는 불이익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그린이라고 하는 색상이 갖고 있는 의미는 무엇일까. 대부분 가능하다, 통과해라, 좋다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색깔로 인식할 것이다. 이렇듯 그린북이라는 책에 나와 있는대로 행동하게 되면 괜찮을 것이라는 그런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얼마나 차별적이고 얼마나 인간을 비참하게 하는 책인지는 그린이라는 색깔이 주는 긍정적 의미 뒤에 감춰진 채 당시 백인 사회의 우월성과 무결성을 돋보이게 하려는 의도가 다분히 느껴진다. 색깔이라는 것은 이런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 색깔이라는 것 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그 성격을 선입견 처럼 생각하고 받아들이고 접근하게 되어 있다. 만약에 내가 그 당시에 백인으로 태어나서 그린북이라는 책을 보았다면 어땠을까? 만약에 책 이름을 그린북이 아닌 레드북이라고 했으면 어땠을까? 아마도 백인이어도 레드북이라는 이 책이 뭔가 잘못되어져 있고 이런 책이 있으면 안될것 같은 그런 느낌을 받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여기서 생각할 수 있다. 그린이라는 색깔이 주는 선입견에 갇혀지거나 감춰진 우리들의 색깔은 무엇일까 하는 것이다. 유색인종을 바라보고 백인들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시선은 어떠한가. 그리고 겉으로 드러난 우리들의 색깔 뿐 아니라 우리들이 갖고 있는 다양하고 가늠할 수 없는 개개인의 색깔들은 어떠한가.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이해하며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 나와 같은 색을 가진 사람과 대화가 더 잘 통하고 더 대화하고 싶고 더 만나고 싶은 우리들의 모습에 어쩌면 마음속 깊히 이미 그린북이 자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세월이 흘렀다는 것이 너무 야속하다.
이 영화를 보는 내내 개인적으로 세월이 흘렀다는 것에 슬픈 마음이 들었다. 세월이 미웠다. 물론 나도 그 세월의 흐름에 같이 흘러가고 있지만 영화속에서 만나는 캐릭터나 연기자들은 그 세월의 흐름을 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들도 있다. 왜냐하면 그 때 그 시간에 스크린속에서 만났던 캐릭터와 연기자들은 그대로 그 세월 속에 영원히 살아 있기 때문이다. 다른 영화에서 그 연기자의 세월 흐름을 만나게 되면 사실 슬픈 마음이 들게 된다. 이런 마음을 들게 한 것은 이 영화의 주인공 토니 발레롱가를 연기한 비고 모텐슨이다. 비고 모텐슨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반지의 제왕에 출연한 유명한 연기자이다. 그는 그 영화에서 아라곤 이라는 캐릭터를 연기했다. 너무 멋있고 카리스마 있는 그러면서 따뜻한 마음을 가진 청년으로 출연했던 그 모습이 이 영화에서는 모두 사라지고 어느 중년의 남성으로 등장한다. 물론 그의 연기는 어느것 하나 흠 잡을 것이 없이 훌륭하다. 내가 훌륭하다는 말을 쓰기가 어려울 정도로 그는 대 배우이다. 그러나 그 시간의 흐름이라는 것을 거스를 수 없는 스크린 속의 그의 모습은 마음 한켠을 아프게 했다.
예상이 가능하지만 전혀 예상할 수 없는 감동을 주는 영화
이 영화는 그 동안 우리가 수차례 봐 왔던 인종차별을 말하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대부분의 인종차별을 말하는 영화는 어떠한가? 흑인들의 노예생활을 말한다던지 그들의 탈출과 자유를 향한 도전이라던지 아니면 차별받는 사회에서 엄청난 노력과 끈기로 어떤 성공을 이룬다던지 하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스토리를 전개한다. 또한 대부분의 인종차별을 말하는 영화들은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되었고 우리는 그 영화가 실화라는 사실에 더욱 감명 깊게 영화를 보게 된다. 이 영화도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예상 가능한 스토리와 실화를 바탕으로 하였다는 사실이 미리 설정되어 있다는 점은 우리가 부인 할 수 없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예상 가능하다고 한 이 부분이 영화가 전개되어 질 수록 예상 가능했던 것들은 어느새 사라지고 새로운 스토리가 우리에게 다가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허샬라 알리가 연기하는 돈 셜리 박사의 모습에서 우리는 인간된 모습을 발견한다. 대부분 이런 영화에서 흑인을 연기하는 캐릭터들은 지식과 물질적인 금전 부분에서 그리고 신분적으로 부족한 설정에서 시작하지만 돈셜리 박사는 돈도 있으며 명예도 있고 신분적으로도 전혀 구애 받지 않는 월등한, 오히려 토니를 고용하는 고용주 입장에서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이 우리가 봐 왔던 인종차별을 주제로 하는 영화들과 다르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완벽한 설정에서 전혀 완벽하지 않는 사람으로 등장한다. 돈 셜리 박사의 흠과 약점이 속속히 드러나면서 그의 인간됨이 표현되고 그러면서 그가 추구하고자 하는 피아노 연주의 이유들이 더욱 더 우리들에게 감명 깊게 다가오게 된다. 이러한 것들을 끌어내고 우리들 마음에 깊히 느끼게 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토니이다. 돈 셜리 박사와 토니와의 관계에서 우리들은 전혀 막힘이 없는 순수한 그 모습의 그대로를 인정하고 세워주고 도와주는 모습과 그에 상반되는 당시 미국 사회의 인식들이 명확하게 구별되어 우리에게 다가온다.
추천에 또 추천하고 싶은 영화
비고 모텐슨은 반지의 제왕에 출연한 이후 작품활동에 있어서 대중적이고 드러나는 영화에 출연한 적이 별로 없다. 이 영화도 마찬가지이다. 그린북 이라는 영화가 엄청난 대중의 인기를 끌고 수백 수천만명이 보면서 열광한 영화가 아니다. 대한민국에서 44만명이 이 영화를 보았을 뿐이다. 그런데도 그는 이런 영화에 출연하고 있다. 아마 그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가 출연한 영화들은 생각하게 하고 그 의미가 작지 않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 영화는 이런 부분에 있어서 정말 추천하고 싶은 영화이다. 그가 출연했기 때문이 뿐만 아니라 그 영화가 갖고 있는 의미를 추천하고 싶은 것이다. 우리의 생각과 의식의 구조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단지 이런 인종차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수 많은 시선과 인식에서 우리는 어떤 생각을 갖고 그것을 결정하고 말하고 행동하는지에 대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너무 진부하고 지루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수 있지만 이 영화는 그런 부분에 대하여 정말 사람의 향기가 나는 연출을 접목시켜 대단한 웃음과 볼거리를 제공하지는 않지만 그 연출에 의해 이 영화에 푹 빠지게 하는 마술을 부리고 있다. 아무튼 최소한 100만명이나 200만명정도가 봤더라면 추천하고 싶다는 이 말이 굳이 하지 않아도 먹히겠지만 숨겨진 보석과 같은 영화 나만 알고 싶은 영화 그린북을 소개하며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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